원작 소설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우찬제
불안의 카타르시스? 불안한 카타르시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이야기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김혜정의 『아무도 불안하지 않다』는 매우 인상적인 불안의 서사이다. 역설적인 제목부터 이미 강렬한 불안 효과를 예비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김혜정은 불안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나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내 안의 낯선 나를 만나는 것은 때때로 위험하고 끔찍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두운 나의 그림자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나를 돌보겠다는 서사 의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불안의 그림자가 깊고 짙을수록, 그림자의 불안은 극적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때로는 내 안의 괴물을 만나기도 하고, 낯선 이방인과 조우하면서 그로테스크하게 깜짝 놀라기도 한다. 불안이란 괴물과의 대면 정도가 심각할수록 상상력의 불꽃은 더 강렬해진다.
작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불안의 그림자를 대면하는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아내의 이구아나」, 「공룡의 집」, 「창고」 등 ‘공룡’ 시리즈 3부작을 주목해보자.
일란성 쌍둥이인 송은희와 송은미 자매, 그리고 죽은 언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생 송은미의 남편 신영준의 이야기인 이 3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코드는 공룡이다. 동생 송은미는 전생에 선녀였는데 공룡을 사랑했다가 아버지 천신의 노여움을 받아 지상으로 적강(謫降)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망상 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다. 이 3부작은 공룡이라는 공통의 화소를 공유하면서 「아내의 이구아나」는 남편 신영준의 시점에서, 「공룡의 집」은 동생 송은미의 시점에서, 「창고」는 화재로 죽어간 언니 송은희의 영혼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남편 신영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아내의 이구아나」에서 서사적 현재 상황의 문제는 이렇게 요약된다. “은희는 죽고 은미는 살았다. 그 뒤 은미는 언니의 이름으로 살았다. 그 은미가 바로 아내였다. 이 모든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75쪽) 아내는 사실을 숨기고 언니로 위장한 일종의 트릭스터였다. 어처구니없이 희생양이 된 언니를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던 아내는 심하게 멜랑콜리한 영혼이 되어 자신을 속이고 남편을 속이며 불안한 실존을 살 수밖에 없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 불안과 멜랑콜리는 사태를 파악해가는 남편에게도 전이된다.
동생 은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공룡의 집」에서 문제의 불안 심리는 더 집중적으로 탐문된다.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 언니가 자기를 구조하러 왔다가 예기치 않게 희생양이 된 사건은 확실히 트라우마였다. “뒤늦게 발견된,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구의 시체가 언니라는 걸 알았지만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102쪽) 왜 입을 다물었을까. 트라우마 때문에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과 짝패인 그림자를 외면하고 싶은 불안의 기운도 작용했을 터이다. 「창고」에서 사후적으로 고백되는 것이지만, 예전에 고아원 시절 언니는 동생을 속이고 대신 입양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언니가 동생의 몫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제는 그 반대 상황이 된다.
이 작품이 말하는 카타르시스는 불안을 깨끗이 씻어내는 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불안은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이기에 단번에 극복할 수 없다. 다만 자신 안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외면했던 타자와 화해하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있다.
우리는 모두 불안한 존재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불안과 함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불안하지 않다』는 가장 두려운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 불안 속에서도 치유와 공생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다.
주) 소설집에 실린 작품해설을 요약하였습니다.